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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수장고 관리자와의 인터뷰: 유물 보관의 숨은 노하우

by 히호지 2025. 6. 10.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은 방문객의 눈에 띄는 찰나의 순간을 위해 오랜 세월 동안 정성껏 보존되고 관리됩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수장고라는,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유물 보존의 치열한 현장이 존재합니다. 이 글에서는 실제 박물관 수장고 관리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유물 보관의 노하우와, 그들의 숨은 노력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박물관 수장고 관리자와의 인터뷰: 유물 보관의 숨은 노하우
박물관 수장고 관리자와의 인터뷰: 유물 보관의 숨은 노하우

온도와 습도, 숫자 이상의 의미: 유물 보존 환경의 과학

유물은 단순히 상자에 넣어 보관한다고 해서 보존되는 것이 아닙니다. 박물관 수장고에서 유물의 보존 환경을 유지하는 일은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밀한 관리의 연속입니다. 수장고 관리자는 온도와 습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무엇보다 큰 노력을 기울입니다. 일반적으로 유기물 계열 유물(종이, 직물, 목재 등)은 섭씨 1822도, 상대습도 4555% 범위에서 보존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반면 금속류는 습기에 민감하므로 습도를 더 낮춰 35~45% 정도로 유지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수장고 내부에는 정밀한 온·습도 조절 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으며, 하루에도 여러 차례 데이터가 자동 수집됩니다. 관리자는 시스템이 정상 작동 중인지 수시로 점검하며, 여름철 장마나 겨울철 난방으로 인한 급격한 환경 변화에 대응해 추가적인 조치를 취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제습기나 가습기를 추가 가동하거나 유물을 보관하는 소형 밀폐 용기를 사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또한 유물마다 보존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수장고는 단일 공간이 아닌 ‘구역’ 단위로 환경 조건이 조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화, 고문서, 섬유류, 도자기 등은 각각 다른 구획에서 보존되며, 각 구획에는 전담 관리자가 지정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환경 관리는 단순히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하는 조건 속에서 유물을 ‘적응’시켜 가는 일종의 생물학적 접근에 가깝습니다.

결국 수장고의 온도와 습도 조절은 과학적 데이터와 실무 경험이 조화를 이뤄야 가능한 일이며, 이 모든 것이 유물의 수명을 연장하고 미래 세대에 그대로 전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유물별 맞춤 포장과 이동의 기술: 안전을 지키는 손길

유물 보존에서 보이지 않지만 가장 중요한 절차 중 하나는 ‘포장’입니다. 수장고 관리자들은 유물을 단순히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유물의 특성과 상태에 따라 맞춤형 포장을 설계하고 제작합니다. 이는 유물이 이동 중 손상되지 않도록 보호하고, 장기 보존 시 외부 환경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포장 방식은 무산성 재질의 종이와 보드, 폴리에틸렌 폼, 타이벡 등 보존용 자재를 이용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문서는 무산성 박스에 넣고 폴리에스터 필름으로 개별 포장하며, 섬유류는 중성지에 싸서 말아 보관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금속류는 황화 방지제를 동봉한 밀폐 용기에 넣고, 가끔 내부 공기를 불활성 가스로 교체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포장 작업은 단순한 수작업이 아니라, 유물의 재질, 크기, 손상 정도, 보존 이력 등을 분석한 후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에서 수장고 관리자는 보존과학자, 복원 전문가와 긴밀히 협력하며, 필요한 경우 특수 장비를 동원해 유물의 구조를 분석하거나 실험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또한 전시나 연구를 위해 유물이 외부로 이동할 경우, 포장과 운송은 더욱 신중히 진행됩니다. 운송 충격을 최소화하는 충격흡수재와 흔들림 방지 장치가 포함된 전용 운송 상자가 사용되며, GPS를 통해 이동 중 위치와 환경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유물의 이동이 단 한 차례의 손상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관리합니다.

수장고 관리자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이 맞춤 포장과 이동의 기술은 결국 유물 하나하나에 깃든 시간을 보호하고, 다시 전시장에 설 기회를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 위협, 해충과 곰팡이: 미세한 적과의 전쟁

유물 보존에서 간과하기 쉬운 또 하나의 위협은 바로 미생물, 곰팡이, 해충입니다. 이들은 인간의 눈에는 거의 보이지 않지만, 한 번 번식하면 유물에 치명적인 손상을 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유기물로 구성된 유물, 예를 들어 종이, 가죽, 직물, 나무는 곰팡이와 해충의 주요 표적이 되기 쉽습니다.

수장고에서는 이를 예방하기 위해 다층적인 대응 체계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인 방침은 출입 통제입니다. 유물을 새로 반입하거나, 반출한 후 다시 들어올 경우, 반드시 일정 기간 ‘격리 보관’하여 유해 요소가 함께 유입되지 않도록 합니다. 이를 ‘검역 보관’이라 부르며, 이 기간 동안 곰팡이나 해충의 존재 여부를 면밀히 조사합니다.

또한 수장고 내부는 정기적으로 해충 포획기와 모니터링 트랩을 설치하여 해충의 출몰 여부를 체크합니다. 포획된 해충의 종류와 개체 수는 데이터화하여 연중 누적 분석하며, 이를 기반으로 해충 방제 일정을 조정합니다. 특히 여름철에는 습도가 높아 곰팡이 번식 위험이 높아지므로, 추가적인 제습 조치와 함께 항균 처리가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곰팡이 역시 보이지 않게 퍼질 수 있기 때문에, 자외선이나 특수 조명을 활용한 검사를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필요시 곰팡이 억제제를 분사하거나 UV 소독을 병행합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유물에 직접적인 화학적 손상이 가지 않도록 세심하게 적용하는 것입니다. 일부 섬세한 유물은 이러한 처치 대신 물리적 제거 후 진공보관으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해충과 곰팡이 방지는 단지 위생의 문제가 아니라, 유물의 물리적 존속을 위협하는 실제적 문제입니다. 수장고 관리자들은 늘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과의 싸움을 이어가며, 유물 하나하나의 생존을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입니다.


수장고는 단순한 창고가 아닙니다. 그곳은 유물의 시간과 역사를 이어가는 과학의 현장이자, 관리자들의 치밀한 전략과 헌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입니다. 박물관이 관람객에게 주는 감동은 수장고 관리자들의 손끝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유물 앞에서 더욱 겸손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