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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존과학자의 비밀스러운 실험실 체험기

by 히호지 2025. 6. 4.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우리는 고대 조각이나 회화, 섬세한 종이문서, 유물들을 눈으로 감상하며 감탄하지만, 그 뒤편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들을 지켜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작품 보존과학자’입니다. 이들은 작품의 상태를 분석하고, 손상 원인을 파악하며,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원형을 유지하도록 돕는 과학자입니다.

오늘은 보존과학자들이 일하는 비밀스러운 실험실로 함께 들어가 그들의 일과와 고민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작품 보존과학자의 비밀스러운 실험실 체험기
작품 보존과학자의 비밀스러운 실험실 체험기

보존과학자의 하루: 작품을 만지기 전, 수십 가지의 분석부터

작품 보존과학자의 하루는 단순히 ‘고쳐주는’ 일이 아니라, 치밀한 과학적 분석으로 시작됩니다. 박물관에 새롭게 기증되거나, 정기 점검이 필요한 유물이 있다면 가장 먼저 ‘진단’ 과정이 이뤄집니다. 이때 사용하는 장비는 상당히 전문적이며, 일반적으로 적외선 촬영, 자외선 조사, X선 투과 검사, 광학 현미경 관찰 등이 동원됩니다. 고대 회화라면 물감 안에 숨어 있는 층의 변화나 후대 덧칠 여부, 균열과 같은 미세 손상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19세기 유화 한 점을 점검할 경우, 자외선 조사로 바니시(광택제)의 변질 여부를 확인하고, 적외선 촬영을 통해 밑그림이 남아 있는지 살펴봅니다. 때로는 미량의 안료를 긁어내어 FTIR(적외선 분광법)이나 SEM-EDS(전자현미경과 원소분석기)로 화학적 성분을 분석하기도 합니다. 이는 어떤 재료가 쓰였는지, 환경 변화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판단하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과학자는 여기서 작품의 역사도 함께 읽어냅니다. 후대에 보수된 부분이 있는지, 원작자의 터치인지 아닌지를 구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손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가진 서사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태도가 핵심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어떤 방식으로 복원할지, 전시는 가능한지 판단하는 종합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보존과학자는 결국 예술과 과학, 역사 해석이라는 세 분야의 교차점에서 일하는 전문가인 셈입니다.

과학과 예술의 경계, 복원의 윤리와 실수 없는 복원

보존과학자의 핵심 업무 중 하나는 ‘복원’입니다. 단순히 떨어진 조각을 붙이는 일이 아니라, ‘원형을 해치지 않으며 되살리는 것’이 원칙입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윤리적 기준과 과학적 판단이 함께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대의 회화가 벗겨졌다고 해서 당시처럼 덧칠하는 것은 금기입니다. 그것은 작품의 진정성을 해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복원은 되도록 되돌릴 수 있는(reversible) 물질을 사용하고, 원래의 구조나 터치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집니다.

복원의 단계는 철저한 계획 하에 이뤄집니다. 먼저 시험 복원(Test treatment)을 통해 실제 본격적인 복원 전에 결과를 예측하고, 사용된 화학약품이나 장비가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점검합니다. 예를 들어 금속 유물의 경우 습기와 염분으로 인한 부식이 있을 수 있는데, 이때 화학적 안정화를 위해 킬레이트제나 가압 챔버를 활용하기도 합니다. 회화 작품의 경우 바니시 제거가 필요한데, 이때도 용제를 희석한 농도로 여러 차례 테스트를 거친 후에 진행됩니다.

또한 작품 보존과학자들은 실수하지 않기 위해 실제 작품이 아닌 모의 재료(테스트 판넬)로 수차례 연습하고, 경우에 따라 국내외 전문가들과 함께 의견을 조율하기도 합니다. 특히 국보급 유물의 경우, 문화재청이나 국제보존협회(ICOM-CC)의 지침에 따르며 협의 절차를 거칩니다.

흥미로운 사례로는, 실수로 인해 오히려 유명해진 복원 사건도 있습니다. 스페인에서 한 노파가 벽화를 자의적으로 복원하려다 예수 초상이 이상하게 변해버린 일이 있었는데, 이는 복원 윤리와 전문성의 중요성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보존과학자는 단지 ‘기술자’가 아닌, 문화재를 위해 신중하고 절제된 결정을 내리는 문화의 수호자인 셈입니다.

보이지 않는 위협, 작품을 지키는 과학적 감시 시스템

복원이 끝났다고 작품이 완전히 안전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은 전시 중에도, 수장고에서도 끊임없는 환경 위협에 노출됩니다. 특히 온도와 습도, 조도(빛의 세기), 대기 중 유해물질 등은 작품 손상의 주요 원인이 됩니다. 보존과학자들은 이를 상시 감시하기 위해 다양한 환경 센서 시스템을 설치하고, 데이터를 주기적으로 분석합니다.

대표적인 감시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온습도 변화: 회화의 캔버스나 종이는 습기에 매우 민감합니다. 일반적으로 미술관은 온도 20℃, 상대습도 50% 내외를 유지하려 합니다.
빛 노출: 자연광이나 LED조명이라도 과도하면 색바램이나 열화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전시 조도는 50~200럭스를 넘지 않도록 제한됩니다.
대기오염물질: 황산가스, 이산화질소, 오존 등은 금속 유물이나 안료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공기 정화 장비나 특수 필터를 통해 제어합니다.
이외에도 작품 내부에 무선 센서를 삽입해 미세 균열, 진동 등을 감지하는 스마트 모니터링 기술도 일부 활용되고 있으며, 디지털 트윈(복제 모형)을 만들어 실제 작품 대신 관리하거나 보관하는 실험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보존과학자들의 실험실은 단순한 복원의 공간이 아니라, 이러한 환경 감시와 예측을 수행하는 종합적 안전관리 센터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형 기획전이나 해외 전시가 있는 경우, 보존과학자는 이동 전·후 점검을 비롯해 포장, 온도 모니터링, 기후 대응계획까지 수립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길로 작품을 지켜내는 이들

작품 보존과학자의 일상은 매우 조용하고, 또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지만, 이들의 손길 없이는 수많은 예술 작품이 지금 이 순간에도 사라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과학기술과 인문학, 예술 감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직업은 문화유산을 지키는 최전선에 있는, 매우 치열하고도 섬세한 작업입니다. 미술관의 뒷편, 조용한 실험실에서 작품과 마주하는 그들의 이야기는, 결국 우리가 문화와 시간을 보존하고 기억하는 방식의 근간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