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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박물관 학예사(큐레이터)의 하루 일과와 진짜 업무 이야기

by 히호지 2025. 6. 1.


많은 사람들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으며 전시된 유물이나 작품에 감탄하지만, 그 배경에 있는 사람들, 즉 학예사의 존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을 보존하며, 대중에게 문화적 가치를 전달하는 일은 학예사의 손끝에서 시작됩니다. 겉으로는 고요하고 차분한 공간이지만, 그 뒤편에는 촘촘하고 분주한 하루가 이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실제 큐레이터들의 하루 일과와 그들이 맡는 업무의 실제적인 면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미술관·박물관 학예사(큐레이터)의 하루 일과와 진짜 업무 이야기
미술관·박물관 학예사(큐레이터)의 하루 일과와 진짜 업무 이야기

아침은 회의와 기록 확인으로 시작된다: 전시 운영의 기본

학예사의 하루는 단순히 작품을 관리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보통 오전 9시에서 10시 사이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날의 전시실 상황을 점검하고, 보존 환경이 적절한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온도, 습도, 조도 등은 민감한 유물이나 미술작품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매일 체크가 필수입니다. 자동화된 시스템이 있더라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이상 유무를 기록합니다.

그 다음은 내부 회의입니다. 큐레이터들은 소속 부서에 따라 고고학, 근현대미술, 디자인, 민속 등 다양한 전공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각각의 섹션별로 논의가 진행됩니다. 전시 준비 중인 큐레이터라면 작품 운송 일정이나 설치 진행 상황, 도록 제작 상태 등에 대해 업데이트를 공유합니다. 특히 외부 기관과의 협업 전시일 경우, 협약 관련 문서나 스케줄 조율이 주요 이슈가 됩니다.

회의가 끝나고 나면 메일 확인과 행정 문서 작성, 연구 자료 검토가 이어집니다. 생각보다 큐레이터의 업무는 문서와의 싸움이 많습니다. 작품 대여, 반환, 보험, 보존처리 요청 등 모든 과정은 공문이나 협약서로 정리되어야 하며, 이는 공공기관의 학예직 공무원일수록 더 엄격하게 지켜야 할 부분입니다.

또한 학예사는 단순히 기획자나 관리자에 머무르지 않고,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해당 전시나 컬렉션에 관련된 학술자료를 꾸준히 조사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일도 병행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오전 중에는 주로 연구 자료 열람과 문서 정리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후는 현장 중심 업무: 작품 관리, 교육 프로그램, 관람객 대응

오후가 되면 보다 현장 중심의 업무가 시작됩니다. 큐레이터는 사무실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시실, 수장고, 교육실 등을 오가며 다양한 업무를 수행합니다. 특히 전시가 진행 중일 때는 전시장을 순회하며 관람객의 반응을 관찰하거나, 도슨트 교육을 진행하고, 전시장의 동선이나 설명 문구에 대한 피드백을 수집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외에도 교육 프로그램 운영은 큐레이터의 핵심 업무 중 하나입니다. 어린이, 청소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해설, 체험 프로그램, 강연 등을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교육용 교구를 만들거나 활동지를 구성하고, 외부 강사를 섭외하고 지원하는 일도 큐레이터의 몫입니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단순한 설명을 넘어서 전시와 관람객을 연결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기 때문에, 매 회의마다 결과를 분석하고 개선 방향을 설정해야 합니다.

또한 큐레이터는 작품의 상태 점검 및 보존 관리 업무도 맡고 있습니다. 유물의 파손이나 변색 여부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외부 보존처리 기관에 의뢰하거나 자체적으로 정비를 계획합니다. 수장고(작품 보관소)는 대중에 공개되지 않지만, 큐레이터에게는 또 하나의 전시장이며, 이곳의 관리도 정기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외부 협력도 빠질 수 없습니다. 학예사는 작가, 연구자, 대여처와 꾸준히 소통하며 전시의 완성도를 높이고, 필요시 직접 작품 운반에 동행하거나, 외부 기관에서 열리는 워크숍에 참석해 발표를 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큐레이터의 하루는 '박물관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박물관을 움직이는 사람'으로 바쁘게 흘러갑니다.

큐레이터의 업무는 전시 그 너머까지: 연구, 정책, 기록 그리고 다음 세대

많은 사람들이 큐레이터를 전시 기획자 정도로만 인식하지만, 실제 업무는 그보다 훨씬 폭넓고 깊습니다. 학예사는 하나의 전시가 끝난 뒤에도 끊임없이 보고서를 작성하고, 다음 전시나 장기 기획을 위한 리서치를 진행합니다. 특히 공공기관의 큐레이터는 정부나 지자체의 문화 정책 방향을 파악하고, 이에 맞는 기획과 예산 확보를 고민해야 하기도 합니다.

기록과 데이터 정리도 큐레이터의 핵심 업무입니다. 하나의 전시가 열리기까지는 수십 개의 작품에 대한 이미지, 작가 정보, 상태 기록, 보험 내역 등이 모두 전산화되어야 하며, 이후에도 아카이빙 작업이 계속 이어집니다. 이 작업은 단순히 현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후대의 큐레이터가 참고할 수 있는 문화자산을 만드는 일이기도 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디지털 전시, 온라인 아카이브, VR 콘텐츠 기획 등 기술 기반 업무도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큐레이터는 전통적인 예술 감식 능력과 더불어 디지털 문해력까지 요구받고 있으며,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관람 경험을 기획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교육 분야에서도 큐레이터는 지속적으로 역할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대상의 박물관 교육은 물론, 지역 커뮤니티와 협업하여 고령자, 장애인 등 다양한 계층이 문화 콘텐츠에 접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결국 큐레이터의 하루는 단순한 ‘보여주기’가 아니라, ‘기록하고 연구하며 사람과 연결하는’ 고도의 지식 노동입니다. 이는 단순한 직업을 넘어선 문화계 종사자로서의 소명의식이 필요하며, 한 시대의 문화적 흐름을 기록하는 역할이기도 합니다.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조용히 땀을 흘리는 사람들이 바로 큐레이터입니다. 이들의 하루는 전시 준비부터 교육, 기록, 연구에 이르기까지 치밀하고 다채로운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방문할 때, 전시 뒤편에서 문화유산을 지키고 이어가는 이들의 수고를 함께 떠올려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큐레이터의 존재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존중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봅니다.